랑탕 히말라야-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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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55/신곰파-둔체-카트만두
Shin Gompa-Dhunche-Kathmandu


마지막 스틱체조를 하고 07:05분 하산 출발-.
고도를 1,400미터나 내리며 급경사길을 세 시간 가까이나 계속 내려갔다. 하산길인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이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산을 다 내려오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모두들 양말까지 벗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다. 등산화 속에 갇혀있던 발이 좋아서 춤을 추겠다.
계곡을 건너고 조금 더 걸어 마침내 해발고도 1,950미터의 둔체에 도착했다. 이제 트레킹이 모두 끝났다. 둔체는 처음 우리가 샤부르베시에 가던 날처럼 뿌옇게 

연무가 짙다. 그 이후 이제까지 좋은 날씨가 이어졌으니 날씨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점심으로 나온 비빔국수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


다시 카트만두에
12:10분 가이드 다와를 제외한 그동안 정들었던 스태프들과 헤어져 버스로 카트만두를 향했다. 스태프들과 어수선하게 헤어진 게 아쉽고 마음에 걸린다

노임만으로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젯밤 밤을 꼬박 새워서 그런지 잠이 쏟아져 이마를 앞자리 등받이에 계속 찧어댔다. 조금 더 가다보니 처음 우리가 샤부르베시에 갈 때 잠시 쉬었던 아미르 

검문소를 통과하는데 내가 사진을 찍은 갈매기 하나와 그의 상사인 갈매기 세 개가 차창으로 얼굴을 내민 나를 알아보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달리는 버스는 불과 몇 초 만에 그들을 스쳐지나갔지만 나도 그들도 서로를 알아보고 한국군 하사, 잘 가세요~’ 하고

 근무 잘하고 건강하게 잘 있어요~’하며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이후로는 어떻게 카트만두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비몽사몽 중에 왔다. 내가 이마로 하도 들이받아서 앞자리 등받이가 부서지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17:30, 둔체에서 5시간 20분을 달려 카트만두 시내의 처음 묵었던 안나푸르나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는 가까운 한국식당에 갔다. 주인여자는 전혀 식당을 할 분 같지 않은데 삼겹살을 비롯한 음식은 아주 맛이 있다

나도 맥주와 소주를 꽤 마셨다. 힘든 트레킹을 완주한 동기들의 표정이 밝고 자랑스럽다. 조금은 들뜬 얼굴들이 보기 좋았고 그렇게 마시는 에베레스트 맥주와 

참이슬 소주는 꿀맛이다.
즐겁게 술을 마시며 이번 트레킹에서의 느낌을 한 마디씩 말하는데 난 내 사진으로 표현해서 모두에게 드리겠다고 하면서 횡설수설 한 것 같다. 그러나 메모를 

정리하는 지금 그 말은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차려 지금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도 랑탕 히말라야를 만난 느낌의 

10%나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촛불
1차를 마치고 감흥을 더 즐기고 싶은 동기들은 2차를 갔다. 좀 취한 상태로 기분 좋게 호텔로 들어오다 호텔현관의 꽃을 띄운 대야에 촛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전부터 보면 네팔의 호텔에선 현관 좌우에 물은 담은 큰 대야를 놓고 거기에 꽃잎의 띄워두는데 밤에 보니 가운데에 쇠로 된 종지를 띄워놓고 

거기에 작은 촛불을 켜 둔 것이다. 뭔가 느낌이 좋기도 하고 처음 보는 이걸 촬영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객실에 뛰어 들어가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나와서는 여러 컷을 촬영했다. 40여 컷을 촬영하는 동안 종지의 초가 다 타서 불도 꺼졌다. 객실에 들어와서 안경을 쓰고 리뷰해 

봤더니 몇 컷이 마음에 든다.

 

 

 


11일차-56/카트만두-인천
kathmandu-Inchon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그젯밤 밤을 꼬박 새우고 어젠 험한 길과 더위 속에 장시간 버스에서 시달리기도 했지만 힘든 트레킹을 마친 안도감과 기분 좋은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부 동기들은 이른 아침에 공항으로 나가 마운틴 풀라이트 (Mountain Flight)를 하고 돌아왔다. 비행기가 떴는데도 날씨가 나빠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보지 

못하게 되면 비행기 탑승료를 받지 않는다니 설사 날씨가 나빠도 손해 날 게 없는 괜찮은 상품이다.

아침을 먹고 시간이 있어 숙소에서의 마지막 메모를 한다.
이젠 몇 시간 후면 네팔을 떠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여기에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트레킹을 하기엔 나이도 많고 몸도 늘 완전하지 않고 

여기저기가 아픈데 더 이상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얼마 가지 않아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도 가끔은 네팔이 그리워질 것이다. 랑탕계곡과 하얀 설산들이, 꿈속에서 만난 것 같은 

꽃길들이 그리울 것이다. 못 견디게 그리울 것이다. 그때마다 난 내가 담아온 사진들을 볼 것이고 어쩌면 연락이 가능한 동기에게 ...랑탕에 같이 갔던 

사람인데요...’하면서 전화를 하고는 네팔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나눌지도 모른다.

몸도 시원찮은 상태에서 결행한 이번 트레킹에 만족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아픈 몸으로 계속 셔터를 누르며 낙오하지 않고 동기들과 함께 한 랑탕-체르코리-

고사인쿤드 트레킹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잊지 않을 것이다.
몸이 아픈 내게 좋은 약을 주던 동기
힘내라며 귀한 간식을 나누어 주던 동기
체르코리 하산길 아끼고 아낀 물을 수통 째 넘겨주던 동기
자신의 지갑을 열어 내게 주며 내 이름으로 가이드에게 사례하길 바라고 내 이름으로 술 한 잔 쏘기를 바라던 동기의 미소 띤 얼굴도 잊지 않을 것이다.

10:35분 호텔 안나푸르나를 떠나 공항으로 출발했다. 메인 가이드 다와는 버스에서 우리들 모두의 목에 일일이 먼 길 떠나는 손님의 안녕을 비는 노란색 가다를 

감아주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의 인사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 다와 너도 잘 있어라. 언제나 건강하고 히말라야의 멋진 가이드가 되어 돈도 벌고 행복하게 

살아가렴. 다와의 수고로움에 내 사진이 있다.

14:20, 우리가 탄 대한항공의 큼직한 비행기는 트리부반 공항을 이륙했다.

히말라야의 영혼을 담고 싶었다.
네팔의 영혼을 담고 싶었다.
타르초와 룽다를 흔들고 지나가는 영겁의 바람 같은 영혼을-.

네팔이 잘 되길 빈다.
그리고 네팔인들이 잘 살게 되길 빈다.


그리울 것이다.
랑탕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도
랑탕리룽의 장엄한 아침도
11일간 함께 한 동기들의 모습과 따뜻한 마음들도 그리울 것이다.
타멜거리의 무질서와 매연과 소음과 후텁지근한 느낌까지도
언젠가는 못 견디게 그리울 것이다.




후기
랑탕으로 출발하기 5일 전인 420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미 다녀온 EBC, ABC 그리고 이번에 

갈 랑탕이 3대 코스인데 랑탕코스가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내용도 있다. 내가 일부러 '3대 코스'를 트레킹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처음 쿰부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사진과 글을 홈페이지에 올릴 때 서버에 만든 폴더명이 네팔을 뜻하는 'np'이고 지금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다시 안나푸르나(an)에 가고 또 랑탕(lt)에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현직에 있던 40대 때도 아니고 막 정년퇴임한 50대 말도 아닌 60대 중반이나 되어서

 2년 동안 히말라야를 세 번이나 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몸이 약해서 가을 운동회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고 아침 조회 때 운동장에 서 있다가 빈혈증으로 쓰러지곤 하던 나를 기억하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눈빛일까.
또 키 171cm에 체중 53kg 허리둘레 28인치였던 최근 15년 전의 나를 기억하는 직장동료들과 친구들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살아오면서 아무 것도 자랑할 게 없는 내겐 지금의 이런 내가 유일하게 자랑스럽다.

하루만 놓고 볼 때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는 것과 한라산 정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을 비교한다면 한라산을 오르내리는 게 훨씬 더 힘들다. 그러나 한라산을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는 건 그날 하루뿐이고 다음 날부터 쉬게 되지만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는 건 나의 경우 최소한 8일 이상 12일 동안을 계속 걸어야한다는 게 

다르고, 고소증에 노출되는 해발고도 3,000미터에서 4,000미터는 물론 5,000미터도 더 오른다는 게 다르고, 또한 먹고 자는 것이 집에서와 다르기 때문에 

힘들다.
그리고 하루만 잘라서 본다고 해도 때로는 한라산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때도 있다. 쿰부의 당락에서 촐라패스를 넘어 종글라를 거쳐 로부체에 가던 

날이 그랬고 랑탕의 체르코리에 오르던 날이 그랬고 밤부에서 촐랑파티에 오르던 날이 그랬다. 한라산에 다녀와서 입술이 터지는 날은 없었지만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면서는 그래서 얼굴과 입술이 붓고 터진다.

그런데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고 그렇게 힘든 줄 알면서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또 히말라야에 간다. 다시는 안 간다고 하면서도 얼마 지나고 나면 네팔지도를 

꺼내놓고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살펴보고는 얼마 지나면 또 거기에 간다. 전에 갔을 때의 힘들었던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왜들 그렇게 히말라야에 갈까.
거기에 가는 사람 숫자만큼 거기에 가는 이유도 많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렇다. 낯선 풍경 속에 들어가 낯선 풍경들을 만난다는 설렘, 그런 풍경들을 내 카메라에 담는다는 기쁨, 그리고 평생 늘 허약하기만 했던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소비하면서도 낙오하지 않고 완주한다는 작은 성취감 등이 나를 히말라야에 가게 한 게 아닐까 싶다.

TV에서 영상앨범 산이나 다른 프로에서도 히말라야의 풍경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 풍경을 보면서 사진 찍으며 거기를 걸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함께 걸었던 동기들의 얼굴과 우리를 위해 헌신했던 스태프들의 그리운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아름답다.
히말라야의 하얀 산도 그리고 히말라야의 일부가 되어 거기를 함께 걸었던 사람들도 내 기억엔 모두가 아름답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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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숙소 앞에서 사진 하나 찍었다.

아름다운 풍경 다 지나고 결국 이렇게 사진쟁이의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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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체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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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어 놓은 빨래를 보면 대강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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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사는 나라일수록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 중에서 학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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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지막까지 서 있는 개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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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로 가는 길

좁은 길에서 차를 만나면 겨우 겨우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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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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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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