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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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일차-10월 8일/시누와-도반-히말라야 롯지-데우랄리
Sinuwa-Dovan-Himallaya Lodge-Deurali
히말라야에서 듣는 예스터데이
트레킹 시작 후 5일 만에 처음으로 숙면을 했다. 지난 밤 8시 반경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깨니 4시, 무려 일곱 시간을 잤다. 새벽에 잠이 깨서 잠시 살펴보니
이제까지 처럼 오한과 발열도 없고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컨디션이 아주 좋다.
오늘 아침엔 촬영할 게 없다. 어제 석양빛을 받는 마차푸차레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시누와에선 오후부터 일몰 때까지의 빛이 좋을 것 같다.
05:30분 기상, 06:30분 식사 그리고 07:30분에 출발했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마차푸차레를 마주보며 시원한 산길을 오른다. 앞에 걷는 박찬호 씨의
스마트폰에선 예스터데이, 미스터 론리 등이 감미롭게 흐른다. 저 노래들이 언제 적 노래인가. 지금부터 40년도 더 전에 내가 총각일 때 좋아했던 노래다.
좋은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좋다.
모디콜라의 물소리와 스마트폰의 음악이 근사한 조화를 이루어 기분까지 상쾌하다.
깃털 같은 몸
오늘은 트레킹 시작 후 가장 컨디션이 좋다. 정말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지난 밤 숙면을 해서 그럴까. 그게 아니라 어제 저녁에 닭을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깃털이 달린 닭을 먹어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진 것일 것이다.
비 온 후의 숲길엔 청량감이 흐르고 스틱을 잡은 손에도 힘이 넘친다. 하룻밤 숙면이 이렇게 만들었다. 매일 밤 숙면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걱정하지 말자. 지치고 지치면 자연히 숙면하게 될 것이니까.
조금 걷다 보니 마차푸차레 좌측으로 강가푸르나(Ganggapurna)가 얼굴을 내민다. 마차푸차레보다도 더 높은 산인데도 더 멀리 떨어져 있고 마차푸차레에
가려 조그맣게 보인다. 그래도 이른 아침의 산과 계곡의 느낌과 입체감 나는 사광까지 좋아 계속 셔터를 누른다. ABC에 갔다가 하산할 때도 볼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날씨와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니 지금 촬영해야 한다.
하늘은 짙푸르고 햇살도 따갑지 않은데 우린 모디콜라를 우측으로 두고 오르고 또 오른다.
소는 누가 키우라고
도대체 지금 히말라야에 한국사람이 얼마나 와있을까 싶다. 아니 그보다 지금 한국에 사람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싶다. 트레킹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정말 소는 누가 키우라고 모두들 히말라야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소를 누가 키우던 그래도 히말라야에서 만나는 동족들은 참 반갑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마스떼~!’ 인사를 하다가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하면 듣기도 말하기도 정겹다.
서울 시장 선거를 앞두고 양쪽에서 죽기 살기 전투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럴 게 아니라 히말라야에 와서 선거운동을 하면 틀림없이 서울시장 당선이다.
한국사람 모두 여기 와 있는데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참.... 거긴 소 키울 사람도 없을 텐데.
원판불변의 법칙
트레킹코스를 혼자서 걷는 사람도 있고 직장이나 동호인 단체로 걷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는 한국 사람임을 느낌만으로도 알게 되는데 특히 여자들은 거의
알아맞힌다.
어떻게 맞추느냐고...? 어떻게 맞추긴, 척 봐서 예쁘다 싶으면 틀림없이 한국여자니까 알지! 정말 그렇냐고? 정말 그렇다니까. 나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 여자들이 비슷비슷하지만 한국 여자는 독특한 아름다움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 느낌만으로도 거의 알아맞힌다.
(내가 다음에 대선이나 서울 시장에 출마하면 최소한 유효표의 50%는 내 표다)
얼마 전 어느 나라 여자들이 서울에 와서 김태희 다니는 미장원을 찾았다고 해서 실소를 한 적이 있다.
김태희가 다니는 미장원에 가면 김태희 처럼 되나?
사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 ‘원판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아무리 수정을 하고 조절을 해도 원판이 시원찮으면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처음 촬영할 때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김태희 미장원을 찾는 등 헛된 곳에 돈 쓰지 말고 자신의 원판부터 잘 살펴보고 돈을 쓰든지 하라는 말이다.
그럼 반드시 원판이 예쁜 사람만 예쁜가.
그럴 리가 없다.
매너가 좋은 여자는 원판에 관계없이 예쁘다.
그런데 놀랍게도 혼자서 히말라야를 걷는 한국인 여자들을 몇 번이나 만났다. 그런 여자들은 그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무조건 예쁘게 보인다.
무거운 촬영배낭 짊어지고 혼자 산을 오르는 여자를 한라산에서도 몇 번 봤는데 그런 여자들은 볼 때마다 예뻤다.
모름지기 여자가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혼자 나설 일이다.
찬비를 맞으며
소풍 가는 날처럼 푸른 하늘로 시작한 아침이었지만 여기선 늘 그렇듯이 ‘미친 년 널뛰듯 하는 날씨’는 오늘도 마찬가지다.
11:41 도반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햇볕에 널어놓아 말리던 양말과 등산화 그리고 배낭 등을 허겁지겁 들여놓느라 모두를 바쁘게
하더니 금세 개면서 햇살이 눈부시다. 그러니 우산이나 비옷은 늘 Stand-by 상태여야 한다.
그러나 난 밥 먹다가 비가 와도 뛰어나가지 않는다. 내 물건 들여놔 주는 고맙고 예쁜 동기 제자가 있기 때문에.
13:00 다시 비가 오는 중에 비옷을 입고 출발-
비가 오다말다 하고 햇빛이 나다말다 하니 후텁지근하고 축축해서 짜증스럽다. 그래도 계속해서 걷는다. 안 걸으면 어쩔 건데.
발아래엔 모디콜라가 굉음을 내며 흐르고 있고 맞은 편 산엔 크고 작은 폭포가 수도 없이 이어진다. 도대체 폭포의 저 많은 물이 어디서 나와 흘러내리는
걸까 싶다. 어떤 폭포는 암벽 중간의 굴에서 튀어나오듯 하는 것도 있다.
그런 물 때문에 우리가 걷는 트레킹코스에도 나무로 만든 다리와 징검다리 그리고 도랑물이 계속 나타난다.
14:50 히말라야롯지에 도착했다. 히말라야롯지를 어느 지도엔 히말라야호텔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미친 중생이 이 험한 산에 호텔을 지었을까
했었는데 다른 곳의 롯지와 같은 건물이 몇 개 있을 뿐인 곳이다. 혼돈 생기지 않게 히말라야롯지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또 대개의 롯지들도 호텔이라는
간판을 붙였으니...
15:00 경부터 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같은 비라도 고도가 3,000미터를 넘으니 아주 차갑게 느껴진다. 거기다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니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 젖은 반팔 셔츠만으로 걷다가 견딜 수가 없어 보온자켓과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장갑도 두툼한 겨울장갑을 꺼내 꼈다. 얼마나 추운지
옷을 충분히 배낭에 휴대하지 않았으면 저체온증으로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데우랄리(Deuralli)
16:40 해발 3,300미터 데우랄리(Deuralli)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롯지는 데우랄리의 맨 꼭대기 집이어서 내 고도계로는 3,354미터 기압 703.2hPa이다.
바람이 몹시 차갑다. 도착하자마자 조리팀이 미리 준비한 뜨거운 밀크티와 이어서 나온 스프 한 그릇이 꿀맛 같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도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참 고맙고 고맙다. 이곳 데우랄리는 4일차에 만났던 데우랄리와 지명이 같다.
큰 방 하나에 침대가 일곱 개, 여섯 명이 들었다. 침대가 작아서 자다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인데 기럭지 긴 나라 사람들은 발목이 아니라 무릎이 침대 밖으로
나오기도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큰 방의 벽에 못 하나 박힌 게 없고 줄 하나 쳐진 게 없어 젖은 옷을 걸거나 널어 놓을 데가 없다. 하긴, 이 날씨에 방안에 걸어 놓는다고
마르기나 할까. 안 되면 지퍼백에 넣어 제주까지 그대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여길 다시 오진 못하겠지만 벽에 줄 치고 못 박아주러 한 번은 다시 와야겠다.
계속 며칠간 땀에 젖은 몸을 씻을 수가 없으니 몸에서 쉰 냄새가 난다.
롯지의 방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야겠다. 방은 사생활의 공간이지만 이곳 롯지의 방은 그런 의미를 한참 벗어나 있다. 눈과 비바람을 막아주고 몇 사람과
몇 사람이 자는 곳을 구획지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이 방에서 하는 말을 저 방에서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건 물론 옆방의 옆방에서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옆방에서 불을 켜면 바닥과 천장과 벽 등 모두에서 이 방에 길게 훤히 빛이 들어온다. 그러니까 나 같이 잠버릇 고약한 사람이 자다가
옆방으로 가지 못하도록 칸막이를 쳐 놓은 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잘 때는 아랫목에서 잤는데 깨고 나면 윗목 책상 아래에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롯지 바로 곁에 모디콜라가 으르렁거리며 흐른다. 여기에 오는 도중 허술한 다리가 많아 가이드가 한 사람씩 건너게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건너다 무게로
다리가 무너져 모디콜라에 빠지면 얼음 같은 물에 그냥 죽는 것이다. 이 외에도 급경사의 돌계단 등 트레킹을 하면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 발목 하나 삐었다 하면 그건 그대로 재앙이나 다름없다.
저녁 무렵 구름이 약간 걷혔다. 그러나 역시 3,300미터나 되는 고지고 바람까지 부니 싸늘하다.
오늘 아침 출발 후 더워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땡볕이 너무 뜨겁다고 나무 그늘을 찾았는데 여긴 두터운 옷을 입었는데도 으스스하도록 춥다.
데우랄리 바로 코앞에 마차푸차레와 히운출리가 있는데도 깊은 계곡의 바닥쯤에 롯지가 있으니 가까운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모디콜라 건너편의
봉우리들을 해가 질 때까지 촬영했다. 춥다고 안 찍으면 집에 돌아가자마자 후회할 것이므로.
전기사정이 여의치 않아 준비해 온 충전기를 이용해 처음으로 카메라와 넥스토의 배터리를 충전했다.
이제 이 충전기만 사용해도 트레킹을 마칠 때까지 충분할 것 같다.
사누와의 아침

마차푸차레를 마주보면서 데우랄리를 향해 걷는다.
쩌어~~기 강가푸르나가 보인다.
강가푸르나가 다가왔다.
이렇게 자주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비를 맞으며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2020년 1월 18일 이 대우랄리에서 눈사태로 한국인 교사 4명과 현지 안내자 2명이 희생되었다)
데우랄라의 모디콜라 건너편에 근사한 암봉이 있다.
몹시 추웠지만 이런 풍경을 두고 사진 안 찍으면 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