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 히말라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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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일차-4월 04일/남체-사나사-몽라-포르체텡가
간밤에 남체에 눈이 내렸다.
흙 먼지 안 나게 촉촉하게 젖은 히말라야 하이웨이를 걸어간다.
봄 날씨 같던 날씨가 몽라를 지나면서 급변했다.
짐 운반은 포터와 야크 몫이다.
종일 운무에 덮여있던 탐세르쿠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탐세르쿠 왼쪽은 캉테가.(6,783m)
어제, 이런 모습의 탐세르쿠를 만나고 싶었다.
서설(瑞雪)
밤사이 눈이 왔다. 남체가 온통 하얗다. 이제까지 남체의 사진을 많이 봤지만 눈에 덮인 남체를 본 적이 없어 우선 몇 컷을 담았다.
어제 저녁 박대장이 내일 걸어갈 히말라야 하이웨이는 흙먼지가 많이 난다고 했었는데 신령님은 그런 거까지 다 배려하셔서 눈을 살짝 뿌려 주셨다.
햇살이 비치자 눈은 녹고 흙먼지 길은 촉촉하게 젖어 연인과 데이트하기 딱 좋은 길이 되었다. ‘신령님, 고맙습니다아~~!’
벌써 5일째 숙면을 하지 못했다. 몸이 얼마나 더 견딜지 좀 걱정이다. 여기선 하루만 움직이지 못하면 그대로 낙오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하루는 만회할 수가 없다. 몸을 아무리 회복 시킨다 해도 일행들이 이틀 동안 간 거리를 하루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트레킹 수칙을 지키고 내 몸을 금덩이처럼 아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트레킹도 사진도 없다.
08:05 포르체텡가를 향해 롯지 뒤편을 돌아 출발했다. 히말라야 하이웨이에 내린 눈은 그야말로 서설(瑞雪)이다.
우리들은 흙먼지도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평평한 하이웨이를 산책하듯 걸어 나갔다. 그러나 날씨는 어제와 달리 구름이 낮게 깔려 탐세르쿠도
어제의 탐세르쿠가 아니다. 7부 능선 이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차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공기도 무척 차갑다.
어제 누군가 그랬었다. 내가 탐세르쿠를 하도 찍으니까 그런 설산은 앞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많이 찍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나 앞으로는 앞으로고 지금 눈앞에 있는 풍경이 마음에 들면 셔터를 눌러야 한다. 앞으로 있을 건 불확실한 거고 지금 눈앞의 풍경은 확실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진은 그렇게 촬영한 후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작업이다. 오늘 이런 날씨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싶다.
걷는 도중 자주 짐을 진 야크 떼를 만난다. 그 순한 눈망울, 사람을 비켜 갈 수 없으면 그냥 가만히 서 있는다. 사람이 비켜 줄 때까지.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철저히 길들여진 짐승이 애처롭다.
몽라로 가는 도중 아주 아름다운 새를 두 번이나 봤다. 파란색이 섞인 밝은 주황색 날개를 활짝 펴고 빠르게 날아가는데 누군가 그게 바로 네팔 공작이라고 한다. 새는 보통 올려다보게 마련인데 우리가 걷는 히말라야 하이웨이의 고도가 높아 그 아래의 어두운 계곡을 배경으로 날개를 펴고 나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히말라야 하이웨이는 사나사에서 끝이고 우리들은 샛길로 들어서서 계속 오르막을 걸어 앞으로 나간다. 짙은 안개와 찬바람 그리고 많은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11;46 고도 4,018미터의 몽라에 도착했다. 뜨거운 밀크티를 한 잔 하고는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은 카레밥이다.
폭설(暴雪)
눈은 거의 폭설로 변했다. 기온도 더욱 낮아졌다. 아침에 옷을 입으면서 어제와 같이 반팔티, 얇은 셔츠 그리고 얇은 바람막이만 입었는데 계속 걸어도
몹시 춥다. 그러면서도 하의는 웬일인지 내복과 두터운 바지를 입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하의마저 어제처럼 얇게 입었으면 오늘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내일부터는 방한 자켓을 반드시 배낭에 넣어야겠다. 체온을 빼앗기면 고소증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점심을 먹고 나자 잠이 쏟아진다. 밤엔 그렇게 오지 않던 잠이. 이대로 죽은 듯이 자고 싶다. 정말 자고 싶다. 졸음마저 달콤하다.
그러나 이제 곧 포르체텡가로 출발해야 한다...
13;15분 폭설 속에 출발. 그런데 몽라 뒤편은 바람이 없어 추위가 훨씬 덜하다. 소롯이 내리는 눈 속에 일행들의 모습이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이
아름다워 여러 컷을 찍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내려가는데 오른 쪽에서 탐세르쿠가 나타났다. 어느 덧 안개도 걷히고 눈도 그쳤다. 옅은 햇살도
비치기 시작한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방금 내린 눈이 전경의 수목을 멋지게 치장해서 노출부족으로 떨어질 곳까지 살려 주었다. 지난 밤 내린 눈과
오늘 낮에 내린 눈은 분명 서설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그저 기상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들을 위한 신령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한라산 신령님과 히말라야 신령님이 서로 문자로 통하신 게 분명하다.
14;20분 포르체텡가에 도착했다. 숙소를 배정받은 후 저녁식사 때까지 시간이 있어 삼각대를 휴대하고는 다시 몽라 방향으로 나아가 탐세르쿠와 그 좌측의
캉테가(6,783m)를 촬영할 수 있는 곳에 삼각대를 세웠다.
일몰의 탐세르쿠와 캉테가
저녁이 되면서 하늘은 차츰 개기 시작해서 곧 맑은 하늘이 되었다. 히말라야는 보통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나빠진다는데 오늘은 반대로 저녁이 되면서
맑은 날씨가 되었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이 부시도록 하얀 설산이 자연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는 듯하다. '깨진 유리와 같은 날카로움', 탐세르쿠는
이 표현도 부족하다. 정상을 보면 마치 두께가 없는 강하고도 얇은 판을 세워 조각해 놓은 것 같다. 손을 대면 그냥 피가 흐를 것처럼 예리하다.
온갖 험한 풍설을 다 맞을 텐데 실내의 조각품이 아닌 산이 무너져 내리거나 뭉툭해지지도 않고 어떻게 저렇게 서있는 것일까.
바로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저것이 진짜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탐세르쿠의 바로 왼편엔 캉테가(6,783m)가 연인처럼 붙어있고 탐세르쿠를 보는 내 뒷편에 버티고 있는 촐라체(6,335m)와 다보체(6,495m)도 운해 속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6,000미터가 넘는 웅장한 고봉 네 개가 나를 중심으로 앞뒤로 가까이 서 있다...
이럴 때는 걸을 때 촬영하는 식이 아니다. 삼각대를 세웠으니 ISO 감도도 400에서 100으로 내리고 조리개도 적정히 조이고 미러쇼크를 방지하기 위해
셔터를 끊기 전에 리모트 콘트롤러로 미러를 먼저 올린 후 셔터를 끊는다. 최상의 화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내가 언제 다시 여기와 와서 사진을 담을 수 있으랴...
어제 낮, 석양의 탐세르쿠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며 그런 풍경을 내가 만날 수 있을까 했었는데 바로 그런 풍경이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내 간절한 소망은 불과 하루 만에 이루어지고 있다.
행복하다... 일몰이 되면서 순백의 설산은 석양빛을 받아 차츰 붉은빛으로 변한다. 황홀한 색감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아..... 이럴 때 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산과 카메라와 내가 하나가 되어 구도를 잡고 셔터를 끊는 동작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럴 때가 내겐 진정 행복한 순간이다. 사진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히말라야에 와서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걸어가면서 그저 몇 컷 훔치듯이 담을 줄 알았지 이렇게 삼각대를 세우고 미러까지 올려가며 셔터를 끊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타칵...턱.
미러가 올라가고 셔터가 작동한 후 다시 미러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럴 때마다 믿어지지 않는 황홀함이 한 컷 한 컷 내 카메라에 담긴다.
한 컷 다시 또 한 컷... 붉은 설산 탐세루크와 캉테가와 촐라체와 다보체가 완전하게 내 카메라에 담기고 또 담긴다...
붉은 설산은 이윽고 마지막 빛을 남기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삼각대를 접고 롯지를 향했다. 춥고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춤을 추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