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쎄게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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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이주해서 사는 동안 모시던 소장님이 육지에 순환근무차 나갔다가 1년 후 다시 돌아오셨다. 육지에 가 계시는 동안 새해가 되어 내가 직접 만든 연하장을 보내드렸다. 난 연하장을 만들 때 지인들에게는 우리 네 식구 가족사진을 넣어 보냈고 다른 분들은 한라산과 제주 풍경사진을 넣어 보냈는데 다 해봐야 열 장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소장님 말씀이 그 연하장을 함께 본 그곳 사업소 사람들이 모두 연하장 참 근사하다고 했는데 내년 연하장을 그런 식으로 좀 많이 만들면 안 될까요 하셨다. 안 될 게 어디 있겠어요 만들면 되지요. 그래서 디자인을 하고 연하장 본체를 만들 업체에 알아보니 최소한 500장은 해야 인쇄도 하고 엠보싱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직원 다 해봐야 150명인데 500장을 어떻게 소화하겠나 싶어서 안 되겠다고 했더니 내가 우선 150장을 신청할게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보세요 하신다. 그래서 아트지를 잘라 네 가지 종류로 샘플을 만들어서 신청을 받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000개나 신청이 들어왔다. 심지어 본사에서 근무하다 순환근무로 내려 온 어느 분은 500장을 신청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연하장 500개와 그거 보낼 우표값만 해도 얼마냐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북제주화력발전소에서 연하장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남제주화력발전소에도 퍼져서 거기서도 신청이 들어왔다. 내가 그건 안 됩니다, 연하장 본문에 ‘북제주화력발전소’라고 찍을 거여서요 했더니 그래도 상관없으니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결국 모두 7,500개를 만들기로 했다.
사진은 동문로터리 부근의 라이카현상소에서 맡았다. 현상소 담당 이 부장은 신이 났다. 사진 7,500장을 빼려면 필름 한 컷 한 컷을 7,500번 이동시키면서 노광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데 내가 주문한 사진은 대략 필름 하나 넣고 인화 숫자에 2,000을 눌러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사진 2,000장이 쏟아져 나오니 20년 현상소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렇겠지, 필름 네 컷 주고 사진을 7,500장이나 빼 가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연하장 본문을 인쇄하고 엠보싱하는 일에도 돈이 들지 않았다. 내가 만드는 연하장 사진을 본 사장이 우리 연하장에 그 사진을 쓰게 해주시면 연하장 본문 제작은 공짜로 해 드릴게요 해서 하이고 고맙습니다~ 했다.
본문과 속지도 제작하고 사진도 만들고 봉투까지 인쇄를 마치고는 우리 집 거실에 아파트 아짐들 여럿을 동원해 짜장면 사주면서 신청인과 주문한 숫자대로 큰 봉투에 넣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회사에 갖고 가서 모두에게 전달했다.
얼마 후 연하장이 사방에 전해졌는데 제일 많이 전달된 본사에 아래 사진의 연하장에 문제가 생겼다. 누가 만들었냐 해서 누군가 내 이름을 댔는지 전화가 왔다.
“사업소에서 불꽃놀이를 했나요? 연하장을 보니 사진에 그렇던데요”
“예, 한 해 동안 무사고 무정지 발전을 해서 연말에 불꽃놀이도 하며 자축했습니다.”
물로 거짓말이다. 그러나 좋은 일에 쫌 하면 안 되냐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사업소는 3직급인 부장급이 사업소장을 하는 아주 작은 곳인데 그런 사업소에서 불꽃놀이까지 했다니 본사에선 야, 이 자식들 봐라 했나 보다. 내가 너무 쎄게 나갔나? 하하하하~~~~^^*
내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나는 거여서 다른 사람의 한 마디로 끝났지만 그 후에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야, 촌동네에서도 그런 거 쫌 하면 안 되냐, 본사에선 유명한 음악인 초청해서 우아한 시간을 갖기도 하잖아~~내년엔 진짜 불꽃놀이를 할 거다 했다.
사진은 이렇게 만들었다. 우선 불꽃놀이를 담은 컬러 네가티브를 하나 찾아내고 야간근무 때 사업소 전경을 찍었다. 그리고는 현상소에서 두 네가티브를 겹쳐서 인화를 했다. 필름의 베이스 색깔 때문에 푸른빛이 강했지만 그거야 CMY 필터를 적정히 조절해서 쉽게 조정되었다. 이런 경우 포지티브에 비해 네가티브는 아주 편리하다.
발전소에서 진짜 불꽃놀이를 한 거 같다. ㅎ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