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탕 히말라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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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일차-5월 1일/강진곰파-체르코리-강진곰파
Kyangjin Gompa-Cherko Ri-Kyangjin Gompa
전갈자리
03:30분 차가운 새벽, 밖에 나왔더니 송영석 씨가 롯지 마당에 있다가 건너편 산 위 하늘을 가리키며 전갈자리라고 한다. 가만히 보니 큰 집게발과 꼬리까지
살짝 구부러진 게 정말 전갈처럼 생겼다. 학교 다닐 때 별자리에 대해 배웠지만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자리만 알았고 실제 하늘에서 찾아보기도 했지
다른 별자리는 모른다. 북두칠성이 포함된 큰곰자리조차도 알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그게 어떻게 해서 큰곰처럼 생겼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갈자리는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찾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가 이번에 처음 별자리를 보게 되었다. 송영석 씨가 말하길 전갈자리는 초저녁엔
보이지 않다가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보인다고 알려준다. 이젠 밤에 한라산을 오를 때 이 전갈자리를 가까이 해야겠다. 카메라를 꺼내 전갈자리를 몇 컷 담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04:45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출발. 바람 없고 하늘은 쾌청. 어젯밤 하늘이 무너지도록 쿵쾅거리며 비를 쏟아내던 하늘은 흔적도 없다.
해발고도 3,700미터에서 하루에 1,254미터를 오르내리는 오늘의 일정 때문에 랑탕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었는데 이제 그 체리코리를 오른다.
이번 트레킹 중 고소증의 위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날이기도 하다.
20여분 쯤 걸어 평지를 지나고 작은 계곡을 건너서부터 급경사를 오른다. 차츰 밝아지는 7,225미터의 랑탕리룽을 좌측으로 보면서 체르코리를 오른다.
지난밤에 내린 비로 등산로가 촉촉하더니 차츰 얼음이 얼고 마침내 눈이 쌓인다. 그리고 차츰 적설량이 많아지고 너덜지대에 도착한다. 너덜지대에 눈이 쌓이니
어디가 안전한 지 또는 빠지는 지 알 수가 없어 위험하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힘들다. 조금도 평평한 길이 없고 거의가 한라산 어리목 숲지대처럼 급경사다.
아니 그보다 경사가 더 급하다. 그래도 근사하다. 어제 오후에 본 엉성하고 후줄근한 모습의 체르코리가 아닌 산뜻하게 하얀 눈이 덮인 모습은 마치 내 사진을
위해 새 단장을 한 듯하다. 지난밤의 폭우가 내게 이런 풍경을 선물했다. 이런 모습의 체르코리를 만난 것도 내 복이고 행운이다. 신령님의 은덕이 높고도 높다.
가슴이 터질 듯 숨을 헐떡인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는다. 랑탕리룽의 햇살 없는 푸른 아침도 담고 막 햇살이 비쳐 황금빛으로 황홀해지는 모습도 담고
또 담는다. 그 바로 곁인 하얀 산인 6,745미터의 킴슝(kimshung)도 담고 뒤로 돌아 6,387미터의 강첸포(Gangchenpo)도 담고 또 담는다. 마음이 급하다.
히말라야의 변덕 심한 날씨에 이 풍경이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화인더 속의 피사체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카메라의 셔터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내게 이런 순간은 단 한 번-.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가뜩이나 숨이 찬데 숨을 멈추고 몇 컷을 찍고 나면 거칠게 숨을 몰아쉬어야 하고 때로는 아찔하게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삼각대를 쓸 수 없으니 감도 ISO를
400으로 올리고 렌즈를 IS모드로 두고도 안심을 못하니 결국 촬영매수가 늘어난다. 촬영매수가 늘어나 메모리와 배터리 소모가 많아져도 놓치거나 실패해선
안 되는 사진이니 어쩔 수가 없다.
체르코리의 서쪽인 등산로에도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지난 밤 내린 신설에서 반사되는 자외선은 산을 오르는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직진한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눈엔 설맹으로 카메라의 LCD 화면에서 보는 노출의 적정여부조차 구별이 안 되어 히스토그램을 보며 대강 맞추어 나갈 수밖에 없다.
정상에 이르는 도중의 능선에 도달할 즈음 먼저 온 동기들이 힘들게 오르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박수를 친다. 그 모습들이 아름다워 몇 컷을 또 담는다.
문제가 생겼다. 정상은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수통의 물이 떨어져 버렸다. 오늘은 점심을 유동식으로 해결하게 되어 점심때라도 물을 공급받을 수가 없는데...
참 큰일이다. 하산해서 롯지에 도착할 때까지 물이 없다니...
능선의 바람이 강하고 차가워서 배낭에서 옷을 더 꺼내 입고는 마지막 급경사의 정상을 향해 걷는다. 허벅지가 다 들어가도록 눈이 쌓여 선행자의 발자국을
조심해 따라가야 하는데 그 발자국마저 푹 빠지기도 한다. 맑고 맑은 하늘에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내리면서도 갈증에 입안은 바삭거릴
정도로 말라 버렸다. 그래도 빨리 하산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정상에 올라야지 하는 생각 뿐이다.
체르코리 정상
11:17분, 롯지를 출발 한 지 6시간 32분 만에 해발 4,984미터 체르코리 정상에 올랐다. 미풍, 햇살이 눈부시다. 룽다와 타르초를 매달았던 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정작 룽다나 타르초의 깃발은 바람에 거의 다 떨어져나가고 몇 개만 겨우 남았다. 이 높은 산에서 부는 바람은 얼마나 모질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기둥들이 대견하다.
온 주위의 하얀 설산들이 체르코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싸고 있다. 먼저 도착한 동기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래도 된다.
이만큼 힘든 고지에 올랐으면 마음껏 기뻐해도 된다. 그럴 자격이 있다.
막내 최명준 씨는 히말라야를 그리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며 울먹인다. 그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강진에서 수직고도 1,254미터의
체르코리 정상에 올라 저렇게 소리칠 수 있으니 아마 최명준 씨도 행복할 것이다.
혜초에서 준비해온 “세계 여성 최초 14좌 등정 오은선 대장과 함께 하는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트레킹 완주” 현수막을 펴고 단체 기념사진을 여러 컷 담았다.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이런 사진에 난 늘 긴장한다. 실패할 게 없을 것 같은 사진인데도 말이다.
동네 뒷산 같은 산에 와서 커다란 현수막 펴고 사진 찍는 걸 좀 그렇게 봐왔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촬영한 이 사진은 반드시 가지고 싶은 사진이다.
사진엔 내가 없지만.
점심을 먹자고 하는데 물이 없으니 뭐든지 먹을 수가 없다. 한 동기가 빵과 삶은 감자 반쪽을 건네주는데 빵은 먹을 수가 없어 물기가 있는 감자 그것도 반쪽만
억지로 먹었다. 그러는 나를 보고 그 동기가 수통에 얼마 남지도 않은 물을 다시 건네준다. 조금 남은 물을 한 방의 박형과 셋이서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이미 정상에 오르기 전부터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1리터짜리 수통 하나라도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물이 떨어진 걸 아는 오 대장은 눈을 먹더라도 반드시 입안에서 다 녹인 후 먹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눈을 그냥 꿀떡 넘기면 절대 안 된다면서.
잠시 후 가이드가 하산해야 한다고 하니 오 대장이 30분만 더 달라고 한다. 그랬더니 단호하게 한 마디로 ‘노!!’한다. 안 된단다. 그리고는 10분만 더 주겠다고
한다. 여기서는 아무리 오은선 대장이라 해도 가이드의 말이 절대적이고 오 대장도 그런 가이드의 말에 이의 없이 따른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11:55분 가이드가 말한 10분도 되기 전에 모두들 하산을 시작했다. 어서 물이 있는 멀고 먼 롯지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물 한 방울 없이
고도 1,254미터의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는 게 특히 물을 많이 마시는 나는 불안하다.
그런데 왜 가이드가 어서 하산해야 한다고 하는지를 금방 알게 되었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급경사 지대에 이르기도 전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쌓인 눈을
날리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높은 산에선 대개 오후가 되면서 강풍이 불기 때문에 일찍 올랐다가 일찍 하산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 랑탕에 도착해서
다음 날 하루에 강진곰파를 거쳐 체르코리까지 올랐던 모 증권사 팀들은 눈보라로 불과 3명만이 정상에 올랐다면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랑탕빌리지에서 내 배터리 충전기를 빌려갔던 그 팀의 일원인 분이 말했다. 특히 높은 산에선 유능한 가이드 유능한 리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허기와 갈증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지만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 내 배낭에도 아침에 받은 빵과 계란과 삶은 감자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입안이 바싹 마른 상태에선
먹을 수가 없다. 힘든 산행으로 체르코리 정상까지 올랐으면서도 점심으로 감자 반쪽만 먹고 몇 시간을 걸어 롯지까지 가야한다는 게 기가 막혔으나 부지런히
걷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어 힘들게 걸으면서도 촬영을 계속했다.
조금만 참자. 롯지에 가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내 기억보다
훨씬 우수한 카메라에 이 풍경을 담자.
이른 아침 올라갈 때는 산뜻하게 눈에 덮였던 곳이 강한 햇살에 거의 다 녹고 푸시시한 모습이 된 곳도 많지만 눈 속에 있다가 모습을 보이는 작은 꽃들도 있어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늘 함께 걷는 박형은 점심 때 먹은 빵 한 조각이 체한 것 같다며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우리를 앞서가던 한 동기를 만나 혹여 물이 있느냐니까 조금 남았는데 다 마시라고 한다. 그 분의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보니 한 컵 정도
남았는데 박형과 둘이 다 마셔버렸다. 너무나 갈증이 심해 좀 남겨야지 하는 체면도 잊었다. 겨우 입안을 적실 정도의 물 한 모금, 그러나 그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급경사 지대를 거의 다 내려와 오른 쪽으로 작은 계곡물을 보게 되었을 때쯤엔 갈증과 허기로 얼마 남지 않은 롯지도 까마득하게 보였다.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가 입안으로 들어가 입안엔 흙모래가 버석거렸다. 이렇게 힘든 데를 새벽에 어떻게 올라갔나 싶다.
계곡물이 흘러도 우린 먹지 못하는 물, 계곡을 건너가 잠시 쉬고 있는데 우리 조리팀 한 사람이 큰 물통에 망고쥬스를 담아가지고 달려왔다. 먼저 도착한
동기들이 갈증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물을 가지고 달려온 것이다. 쥬스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우리 뒤에 다른 사람들이 또 있다면서
계곡물을 건너 달려간다. 나와 박형이 맨 뒤인 줄 알았는데 우리 뒤에도 다섯 사람이 더 있단다.
롯지가 가까워지면서 박형의 걸음걸이가 거의 풀려 비틀거렸으나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잘 견디었다. 새벽에 출발한 지 10시간 45분만인 15:20분 롯지에
도착했다. 박형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내가 준비해 온 우황청심원을 한 알 꺼내 먹이고 쉬게 했다. 우리 조리팀이 맛있는 스프를 준비했으나 나만 먹고
박형은 그조차 먹지 못했다. 박형은 저녁식사까지 거르고 계속 누워 있기만 했다. 내일 밤부까지의 하행길이 가깝지 않은데 걱정이 된다. 밤새 기력이
회복되기만 바랬다.
오늘 체르코리를 비롯한 주위의 산이 모두 지난밤에 내린 신설에 덮여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신설은 우리가 하산 할 때 쯤 모두 사라졌다. 사진을 하면서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몹시 힘든 하루였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 찍으며 사고 없이 체르코리 정상에 오르고 온 게 기쁘다. 랑탕 준비를 하면서 바로 오늘에
대한 일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어려운 숙제를 멋지게 해치운 기분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지쳐서 그런지 마음이 좀 스산해 진다. 제주의 집을 떠난 지 오늘로서 1주일째다. 미풍식당의 해장국도 먹고 싶고 이군이
끓여주는 육개장에 소주 한 잔 마시고도 싶다. 어서 트레킹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 눈 위에 탄 얼굴이 몹시 쓰리고 화끈거린다.
새벽시간 헤드랜턴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랑탕 리룽을 계속해서 담았다.
좀 춥지만 상큼한 트레킹-
근경의 경사면은 지난 밤의 폭우 덕분에 쌓인 눈이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죽기 살기로 올라가다가 뒤 돌아보니 많이도 왔다.
사진 찍으며 늦게 올라오는 내게 동기들이 손 흔들며 '힘 내세요~!'
해발 4,984미터 체르코리 정상에 다 올라왔다.
누군가 핸드폰으로 내 사진도 하나 찍어줬다.
하산길에-
새벽에 올라갈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양지쪽에 예쁜 꽃도 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