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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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주제가를 부르고 바로 하산이 시작되는데,
저 어딘가에 있을 낮달을 보며 노래를 불렀던 곳에서 바로 급강하합니다.
올랐던 오솔길보다 더 깊고 더 업그레이드된 숲이 펼쳐집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더욱 굵고 더욱 치솟습니다.
나무를 한 번 안아 보아요.
나무의 기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온답니다.
니가 길고 높아서 키서방이더냐.
소나무가 속삭입니다.
스윽 내려다보더니
고마 가라아~ ㅋㅋ
소년들이 타잔놀이합니다.
이 곳의 다래넝쿨은 소나무의 위용에 걸맞습니다.
복장이 불량해선지(십원짜리 팬티 복장이 아니라는 거쥐.)
타잔놀이가 힘에 부치는군요.
해병대의 이름으로 장렬히 저격 당합니다.
이 때 홀연히 나타난 똘이장군
전광석화와도 같이 빠르게 덩쿨을 타고 오릅니다.
(헉! 넌 누구냐... 어느 별에서 왔니?)
뿌듯뿌듯 으쓱으쓱~ 똘이장군 어깨에 어느덧 기부스가....
'흠, 소싯적 나를 보는 것 같군. '
바라보던 소년들이 감회에 젖습니다.
'난 어릴 때 논두렁가에서 콩 줍느라고 저런 거 못해봤는데...'
키서방의 탄식이 들리는군요.
똘이장군, 내려올 땐 쩔쩔쩔 매는 듯.
신나하는 키서방.
'나 같으면 그냥 띠 내리믄 되는데.. '
나무다리가 나옵니다.
소년들이 가야할 방향이군요.
나무다리를 건너지 않고 우측으로 오릅니다. 상선암에 들렀다가 가려고요.
'나무의 허리사이즈는 성인 가슴높이 쯤 되는 위치에서 둘레를 재는 것이야.
이를 곧 흉부직경이라고 하지.'
해박한 치자꽃 소년의 설명에
'얘들아 뭐하노? 적어라 적어.'
시님 소년이 부추깁니다.
어둑시근한 숲속에 갑자기 내려비추이는 광명너머로
상선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물 두 채로군요.
부처님 계신 곳이니 정숙하라는 시늉으로 똘이장군, 손가락을 입에 갖다댑니다.
그러더니 곧 부욱~ !!! 피리 소리 참 잘 들립니다.
상선암에 들른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을 거라서 거울 좀 보고....
다들 용모단정화에 힘쓰는데 샘가에 앉아 엄떤 짓 하다가 먼산까지 파는 키서방.
(원~ 엄씨라서)
'가파른 절벽위 저 소나무 절벽이라고 하나 소나무 설 자리 없겠는가.'
시님 소년, 한시 한 구절 저절로 읊어지고...
스님은 출타를 하신 듯도 하고 아니 하신 듯도 하고.
소년들의 천부적인 준비위원장님이신 우리의 월산,
때꺼리가 우찌되나아~
기질을 숨기지 못하고 쌀독, 장독의 내부를 확인해 봅니다.
상선암을 나와서 아까의 그 나무다리를 건너지요.
곧 성삼재 도로가 나옵니다.
성삼재 도로는 숱하게 달려봤지만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품었을 숲이
이 정도로 수려한 줄을 까맣게 몰랐네요. 차마 몰랐네요.
도로를 건너 맞은편 숲으로 다시 파고 듭니다.
길은 또렷하고요.
성삼재 도로가 생겨나기 전, 군사작전용 도로였다고 시님이 알려줍니다.
길이 흐지부지할 때는 잘 살펴서 또렷한 길을 찾아내서 계속 내려갑니다.
음, 다와가는 듯 합니다.
한자 한 줄, 한글 한 줄의 각자가 박힌 바위 앞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를 설계하신 시님이 눈시울을 붉힙니다.
오늘 있은 산행의 감회에 젖은 것인지 바위의 각자의 내용때문인지.
천은사에 닿았습니다.
천은사의 기와지붕에서 완연한 기품이 흐르는군요.
자, 이제 집으로 가야죠.
아침에 차를 주차한 곳까지 가려면 히치하이크 해야지요.
시님이 히치의 정석을 키서방에게 가르칩니다.
'이, 허리를 90도 각으로 숙여서... 아, 키서방은 길어서 90도가 안될라나?
에, 정중하게 해야지. 대놓고 잡으머 안 되고 에, 연인으로 보이는 차, 고급승용차는 절대 잡으면 안 된다이~.'
키서방을 적정위치에 배치시키고 참 염려가 큽니다.
저 뻣뻣해서 성공이 될런지. 내가 미인계로 나서야 할런지....
이 때 치자꽃님 등장, 여서 뭐하노 히치는 미인계를 써야 가능성이 높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달립니다.
막 다 달렸을 때 유키이~ 하고 부릅니다.
돌아보니 자동차가 한 대 달려오고 있고
시님이 히치에 성공한 자동차이니 단디 붙들어 세워 타라는 지시입니다.
(내 미인계는 언제 써 보나 쩝!)
때를 맞춰서 비가 두두둑 떨어지는군요.
키서방이 자동차를 가지러 빗속을 달립니다.
천은사로 소년들을 데리러 되돌아오는 길에서 히치의 전설 한토막을
키서방이 들려줍니다.
전설의 주인공은 뽓때님!
차가 달려온다.
도로 중앙으로 나간다.
되는 힘껏 절도있고 정중하게 팔을 꺾어 거수경례를 한다.
기에 질려 차가 선다.
바로 다가가 차 문부터 열어 붙들고 좀 태워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이 때 눈동자가 흔들리면 아니되고.... 애원을 하되 카리스마를 뿜을 것이며.
차 안이 닭장이든 내가 짐짝 신세가 되든 개의치 말 것이며.
포개어 앉는 것도 기꺼워 할 것이며...
그래서 키서방 무릎위에 뽀때님이 안겨 갔다는 히치의 전설.
산은 모든 속세의 짐을 가져가 줍니다.
치자꽃님의 옻독과 유키의 열꽃도 뺏아갔네요.
산동무들은 경직되고 긴장된 내장의 근육까지 웃게 만들어 주지요.
모두 오늘처럼 늘 지리산과 함께 즐겁고 건강하면 참 좋겠습니다.
치우(이 재섭)님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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